designed & photographed by kottbatt prologue 인터뷰를 시작하고 나서 많은 플로리스트 선생님들의 인스타그램을 눈여겨보게 됩니다. 새내기 선생님들의 상큼한(!) 접근도 멋지고, 베테랑 선생님들의 강렬한(!) 디자인도 멋지고요. 전에는 그저 다양하고, 새로운 디자인만 쫓았다면 지금은 그 속에 녹아 든 선생님들의 일관된 의도와 생각을 보는 게 재미있어졌어요. 물론 사용하시는 꽃과 소재가, 디자인이 매번 달라지지만 그 와중에도 일관성이 있어요. 특히 인터뷰를 하고 나서 그 선생님의 계정에 다시 들어가 꽃을 읽고(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아요) 있노라면 그 꽃들과 선생님이 꼭 닮아 있더라구요. 이번 인터뷰도 역시 많은 선생님들께서 요청해 주셨고, 또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선생님과의 시간을 담았습니다. 용산에서 플라워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계시는, 꽃밭 임태현 선생님 입니다 :) 이번에도 다소 호흡이 긴 글이 될 것 같아요. 익어가는 가을과 꼭 닮은 커피 한 잔과 함께 여유롭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esigned & photographed by kottbatt Q 무엇, 또는 누군가가 선생님을 이 길로 이끌었나요? 꽃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생각해보면 강력한 이끌림이 있었다기 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았더니 자연스럽게 이쪽 길로 흘러오게 된 것 같아요. 저는 관심있는 분야가 생기면 깊이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요. 또 그만큼 무언가에 쉽게 질리는 성향도 함께 갖고 있고요. 꽃 일을 하기 전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해왔는데, 그건 저의 그런 성향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디자이너면 디자이너로, 기획자면 기획자로 한 길을 걷겠다는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고, 서로 관련 없는 분야의 일들을 길어야 2년도 안 되는 짧은 호흡으로 일했었어요. 꽃 일은 벌써 11년차인데, 아마 다른 일에서는 꽃만큼 오래 일할만한 매력을 못 느꼈던 거겠죠! 사실 꽃을 시작할 때에도 언젠가는 이 일에 싫증이 날까봐 두려웠어요. 기획자로 광고대행사를 다니던 시절은 일때문에 밤샘이 잦았고, 클라이언트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어 스무고개를 하듯 끊임 없이 주고받는 일이 저와는 맞지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지인을 통해 카페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연락을 받았고, 아주 막연하게! 내 사업을 하고 싶다며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 두었어요. 그냥 광고를 그만두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거예요. 카페에서 아침 7시에 오픈하고 밤 11시에 마감하며 4개월간 일을 했어요. 내 사업을 하려면 돈(과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타이밍에 다른 회사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고, 그 회사를 다니며 돈을 모아 창업을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직장인 생활로 돌아갔죠. 이 모든 일들이 광고대행사 퇴사 후 4개월 사이에 큰 고민도 없이 이루어졌어요. 그러면서 주말에 꽃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꽃은 당시에 저에게 굉장히 새로운 분야였어요. 어려서부터 손으로 뭘 만지고 또 만드는 걸 즐거워했는데, 꽃은 배운 적도, 배워볼 생각도 한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우연히 까사스쿨이라는 곳을 통해 본 꽃들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이제껏 꽃은 좋아하지도 않고 여러 편견도 있었는데,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꼭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배웠어요. 사업을 하고 싶었던 아이템은 따로 있었거든요. 하지만 꽃이 사업 아이템이 될 수도 있겠다 정도로만 생각했죠. 주중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는 꽃을 배우는 일상이 지속되면서 깨달은 건, 주중엔 스트레스를 받던 제 자신이 주말만 되면 많이 행복해진다는 사실이었어요. 꽃이 저와 잘 맞는 것 같았고, 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함께 꽃을 배우던 친구와 꽃밭을 시작하게 됩니다. designed & photographed by kottbatt Q 꽃으로 창조하는 일을 함에 있어서 선생님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잘 하고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수익이예요. 이 일은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없어요. 나름 잘 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문득 의구심이 들 때가 있죠. "나 잘하고 있는 건가?", "정말정말 잘 하고 싶다!" 무한히 생각해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작업에 대한 칭찬을 듣는 일이나, 도대체 어떻게 알고 저에게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건지 신기한 수강생 분들의 존재가 방증이 되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확신이 있어야 그런 말들을, 그런 상황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수익, 그러니까 '돈'은 제가 제공하는 꽃의 가치에 대한 클라이언트의 인정이예요. 사적 관계가 없는 채로 냉정하게 매겨진 타인의 인정인 거죠. 저는 제가 꽃 일을 잘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더라도 돈을 충분히 벌 수 없다면 이 일을 직업으로 계속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생각하는 견적의 기준,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기준이라는 게 있고, 그 기준에 미치지 않는 프로젝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중히 거절하기도 합니다. 거절이 어려워 기준에 못 미치는 일을 하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어요. 시간이 흐른 지금은 거절 당하는 모양으로 거절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죠. 이 직업을 가진 우리는 스스로가 전문가로 인지되기 위해서 당장 일을 놓치더라도 정당한 수익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제가 체감하기로는 많은 분들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꽃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고 그에 합당한 견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야 해요. 제 스스로 만족스러운 프로젝트를 마치고 같은 클라이언트가 다시 함께 일하자고 연락이 올 때는 더 없이 기뻐요. 만족했다는 확실한 피드백이잖아요. 그 순간 더 더 더! 잘 해내야 겠다는 마음을 다져요. 작업의 퀄리티에서도,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도요. 결국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에는, '타인의 인정'과 '수익' 모두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겠네요. designed & photographed by kottbatt Q 선생님의 꽃은 디테일하면서도 간결한, 정돈된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꽃을 디자인할 때 어떤 요소에 가장 중점을 두고, 편안함을 느끼나요? 질문에 제가 작업에 중점을 두는 요소들을 모두 언급해 주셨어요. 간결하고, 정돈된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요. 결과물을 눈앞에 두고 봤을 때 저는 안정감을 먼저 느끼고 싶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할 때에도 색의 배치균형, 무게중심 등을 수시로 체크하곤 해요.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닐 텐데, 꽃 일을 해오면서 지금은 아직 그 정도 단계에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미술을 전공했는데, 처음 그림을 배우러 가면 선 긋기만 일주일 하고, 그 다음에는 원기둥, 삼각뿔 순으로 그립니다. 이렇게 그림을 시작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양감, 어둠과 빛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거죠. 물론 꽃은 원래 예쁘게 생겼지만, 그 꽃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건 또 다른 얘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만큼 기본기가 중요한데, 그게 저의 꽃에는 안정감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designed & photographed by kottbatt Q 선생님 수업의 후기도 듣고, 또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수업 사진들을 보면 정말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시는 것 같아요. 수업을 진행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실 저는 더 다양한 수업을 제공해야 한다고 마음의 숙제처럼 늘 생각해요. 직업인으로서 꽃을 다루기 위해 세세한 테크닉이나 부자재의 쓰임 등을 다 알고 경험해봐야 나중에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자신만의 디자인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사실 40회, 50회씩 되는 긴 호흡의 수업을 진행해야 많은 부분들을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건강상의 문제가 있어 긴 수업은 현재 쉬어 가고 있어요. 꽃밭은 지금 취미반을 진행하지 않아요. 꽃을 배워서 직업으로 삼겠다는 분들과 취미로 배우시는 분들이 섞이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예요. 직업을 염두에 두고 배우시는 분들에게는 충분히 꽃과 씨름할 시간을 드리는 편입니다. (점점 작업 시간이 늘어져서 요즘에는 닦달을 하기도 합니다. ㅎㅎ) 실무에서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이지만, 꽃을 배우는 단계에서는 충분히 시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내 손에 쥐어진 이 꽃은 어떤 특성이 있고, 이런 저런 모양의 이런 저런 아이템을 만들 때에는 어떤 점이 도움이 되는지, 또 어떤 형태를 만들기 위해 꽂아 나가는 꽃의 길이나 각도에 대해 스스로 깨달아야 하거든요. 제가 그래야 되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의외로 디자인이나 속도를 강조하는 수업은 하지 않습니다. 그건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좀 재미없더라도 기본기과, 크기와 형태감을 강조하는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designed & photographed by kottbatt Q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계절, 또는 가장 좋아하시는 꽃은 무엇일까요? 가을이 가장 좋아요. 봄도 물론 좋지만 저는 좀 더 서늘하고 건조한 계절인 가을이 좋네요. 꽃 하기 좋은 계절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꽃은 하나만 고를 수 없어요! 다알리아, 에키네시아, 천조초, 클레마티스, 아네모네, 백합, 카라, 스위트피, 붉은 색을 띈 잎사귀, 그리고 대부분의 열매 소재를 좋아해요. 그 중에 꼭 하나만을 고르자면 요즘은 다알리아가 가장 좋아요. 색도 모양도 다양한데, 화려하기도, 우아하기도, 멋지기도, 예쁘기도, 귀엽기도 하고, 존재감도 확실하거든요. 매년 조금씩 더 튼튼해지는 다알리아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해요. designed & photographed by kottbatt Q 좋아하는 플라워 아티스트, 또는 그 외 분야의 예술가는 누가 있을까요? 저는 제가 까사스쿨에서 배우며 처음 알게 된 故 제인 패커를 여전히 좋아해요. 그 분은 꽃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그으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제인 패커가 살아 생전에 직접 어레인지한 꽃들로 냈던 책들을 보면 지금도 정말 멋있고 아름답고 감각적이예요. 자연물인 꽃을 가지고 매뉴얼을 만들어서 상품화하는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고요! 그리고 그 디자인들은 많은 플로리스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널리 사랑받고 있죠. designed & photographed by kottbatt Q 앞으로 선생님께서 해보고 싶으신 꽃은 어떤 모습일까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만일 꽃 일을 앞으로도 쭉 한다고 생각하면 저는 로드숍을 다시 한 번 하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쭉 생각해왔어요. 긴 수업도 외부 프로젝트도 안하는, 플라워 숍만 운영하는 플로리스트요. 일주일에 4일만 문 여는 꽃집, 언제든 손님에게 화병에 꽃 꽂는 법을 간단히 알려주는, 적당한 크기의 화병과 꽃을 판매하는 작고 근사한 가게를요. 플로럴 폼에 꽂는 방식이나 핸드타이드보다 저는 화병에 꽃 꽂는 걸 가장 좋아하거든요. 꽃도 저도 가장 편안하달까요. 화병꽂이는 누구나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꽃다발을 선물 받아도 결국은 화병에 꽂아야 하는데, 포장된 꽃다발을 그대로 화병에 꽂는다거나, 방송에 나왔던 누군가처럼 술병에 줄기가 벗겨지도록 꽂아버리는 걸 보면 마음이 안좋아요. 조금만 알면 꽃을 오래 즐길 수 있을 텐데 말이예요. 제가 이 가게를 통해 화병꽂이의 매력을 전파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전에 다른 세상의 매력을 발견하고 꽃 일을 그만 둘지도 모르지만요! ㅎㅎ designed & photographed by kottbatt epilogue 선생님의 꽃만 보다가, 함께 장장 3시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더더욱 선생님의 팬이 되어버린 거 있죠!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선생님의 꽃들이 왜 이런 모습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선생님처럼 수업을 진행하시는 플로리스트 선생님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계절인 가을에 선생님의 인터뷰를 올릴 수 있게 되어 기뻐요. 바쁜 와중에도 내어주신 시간 정말 감사합니다 :) 그리고 자꾸 꽃계를 떠나실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부디 오래오래 꽃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디 가시려구요! 꽃밭 선생님의 인스타그램과 웹사이트에서 보다 많은 작업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instagram.com/kottbattwww.kottbatt.co.kr designed & photographed by kottbatt